천계영 작가/넷플릭스 ‘좋아하면 울리는’ 제공 © 뉴스1

(서울=뉴스1) 윤효정 기자 = “얘들아 언니가 꽃미남 많이 그려줄게. 너희는 행복하기만 해.”

1996년 데뷔작 ‘탤런트’부터 2019년 ‘좋아하면 울리는’까지, 소녀들에게는 천계영 ‘언니’가 있었다.

천계영은 말한다. 10대 시절에 순정만화를 보면서 위로를 받았듯이, 자신 역시 언제나 10대 소녀들에게 힘이 되는 존재이고 싶다고. 그는 꽃미남과의 로맨스를 담은 단순한 순정만화를 넘어 독보적인 스타일을 구축한 ‘천계영표’ 순정만화들을 탄생시켰다. 재기발랄한 캐릭터와 화려한 터치,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으면서도 무한한 상상력을 더한 소재들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언플러그드 보이'(1997)와 ‘오디션'(1998) ‘예쁜 남자'(2009)을 내놨다.

종이책에서 스마트폰으로 옮겨가는 만화 시장의 변화에서도 천계영은 뒤처지지 않았다. 지난 2015년 포털사이트 다음 웹툰에 ‘좋아하면 울리는’ 연재를 시작했다. 여전히 그가 사랑하고 그를 사랑하는 10대의 이야기에 사랑과 ‘좋알람’ 앱을 녹였다. 좋아하는 사람이 반경 10미터 안에 들어오면 알람이 울리는 ‘좋알람’이라는 기발한 상상력을 만화로 풀었다. ‘좋아하면 울리는’은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드라마로 제작돼 지난달부터 엔터테인먼트 서비스 플랫폼 넷플릭스를 통해 상영되고 있다.

지난해 천계영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종양 제거 수술과 손가락 퇴행성 관절염으로 인해 더 이상 손으로 만화를 그릴 수 없었고 스스로도 ‘만화가 인생의 가장 큰 위기’였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목소리’로 명령을 수행하는 컴퓨터 기술로 통해 여전히 만화를 그리고 있다. 다소 느리고 버겁지만 오늘도 그는 만화가 천계영으로 산다. 좋아하는 영화라 수십 번을 봤다는 ‘매드맥스’ 포스터가 가득 붙은, 고양이 ‘시즌이’가 함께 사는 서울 을지로의 작업실에서 천계영을 만났다.

<[N이사람]①에 이어>

-드라마 버전을 만드는 이나정 감독에게 특별히 바란 것이 있었나.

▶원작자로서 ‘감독님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해달라’고 했다. 나 역시 창작자여서 안다. 누가 요구한다고 해서 되지 않는다.(웃음) 자기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스타일로 해야 잘 나온다. 감독님 역시 이 작품을 깊이 읽었고 내가 발견하지 못한 지점도 봤다. 많은 이들에게 내 작품들이 통속적이고 화려하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내면의 어두운 면도 보인다고 하시더라. 내 안에 그런 면도 있었나보다.

웹툰 ‘좋아하면 울리는’/넷플릭스 제공 © 뉴스1

-바라는 캐스팅이 있었나.

▶미리 구상했던 인물 자체가 없었다. 만화에 현실 인물을 빗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드라마화된다고 했을 때 김소현씨는 머릿 속에 떠오르더라. 조조의 느낌이 난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캐스팅됐다고 하니 너무 좋았다.

-드라마는 다 봤나.

▶아껴서 보고 있다. 내가 썼던 대사들도 나오니까 떨리기도 하고 대면할 용기가 안 나는 것도 있다. 일단 지금까지 본 걸로는 너무 재미있었고 내 예상 이상으로 좋았다. 감독님의 전작 중에서 ‘눈길’을 무척 좋아했다. 역시 감정을 섬세하게 잘 다룬다. 만화 속 인물들을 ‘진짜’처럼 그렸더라. 조조의 이모가 나올 때는 깜짝 놀랐다. 진짜 있는 인물처럼 현실감이 있더라. 너무 좋았다.

-지난 1996년 데뷔 이후 23년이다. 만화책에서 웹툰으로 플랫폼 등 환경의 변화에 빠른 적응력으로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원동력은 어디서 오는가.

▶나는 진짜 독자들을 좋아한다. 이상하게 애정이 크다. 어떻게 보면 내가 생각하는 독자들의 모습을 합친 것이 조조같은 캐릭터다. 다들 청소년기에 조조만큼은 아니어도 나름의 힘든 부분이 있다. ‘구겨지지 않을 거야’라는 대사가 나왔을 때 독자들이 자기의 이야기처럼 공감하면서 조조가 행복하기를 같이 응원해주는 것이 고마웠다. 조조가 행복해져서 독자들도 행복하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나도 어릴 때 힘든 시기를 보냈는데 그때 순정만화를 본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 학교 끝난 후 만화가게에서 몇 권씩 보곤 했다. 판타지 속의 테리우스나 캔디들 보면서 ‘꺄’하고.(웃음) 그게 내 인생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해줄 수는 없지만 설레고 따뜻한 감정이 하루를 버티게 해줬던 것 같다. 독자들에게 내 만화가 그런 역할을 해준다고 생각하면 더 재미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로 행복하길 바란다.

천계영 작가/넷플릭스 ‘좋아하면 울리는’ 제공 © 뉴스1

-독자와 끊임없이 교감하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에 트위터에도 썼다. ‘얘들아 언니가 꽃미남 많이 그려줄게. 너희는 행복하기만 해’라고. (웃음) 독자들이 ‘하트’ 많이 보내줬다. 다른 건 도와줄 수 없지만 그게 내가 진심으로 해주고 싶은 일이다. 꽃미남 순정 로맨스여도 그걸로 행복해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큰 보람이다.

-건강문제로 지난해 연재를 중단했다. 이후 목소리 인식 기술로 만화를 그리고 있다고 직접 근황을 알린 이유는. ▶살면서 연재를 쉬어본 적이 없었다. 나 역시 그렇게 오래 연재를 쉬게 될 줄 몰랐다. 내 만화가 인생에서 최악의 위기가 지난해였다. 다행히 그 시점에 드라마가 나와줘서 독자들에게 그나마 미안함을 덜었다. 어쨌든 원작을 계속 보고 싶고 어떻게 결말이 날지 궁금해 하는 독자들에게 계속 자리를 비워두는 것이 미안했고, 내게 주어진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내가 일하는 것을 하나 하나 기록하는 것,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맥의 ‘손쉬운 사용’이라는 기능을 통해서 일을 했다. 여러가지 기술을 찾아 봤는데 나에게 가장 필요한 기능이었다. 애플에게 고맙더라.(웃음) (아프기 전에는) 스쳐가는 아이콘이었는데 정말 크게 다가왔다. 신체가 불편한 분들도 내가 작업하는 걸 보면 힘을 얻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서로에게 힘이 됐으면 하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다.

ich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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