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계영 작가는 ’너무 집에만 있어서 몸에 이상이 온 것 같아 작업과 휴식공간을 분리했다“고 했다. 늘 함께 하는 고양이 ‘시즈니’. 드라마 시즌2 제작에 대한 염원을 담은 이름이다. [사진 넷플릭스]

30~40대 여성에게 천계영(49)이란 이름은 추억의 동의어다. 90년대 순정만화 잡지 ‘윙크’를 보던 소녀들에게 천계영 작가는 데뷔작 ‘언플러그드 보이’로 혜성같이 등장했다. 후속작인 『오디션』 단행본은 100만 부가 넘게 팔려 나갔다.

지난달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좋아하면 울리는’은 다시 그 시절을 소환했다. 2014년 다음 웹툰에서 연재를 시작해 누적 조회 수 4억7000만 회를 기록한 천계영의 원작은 이나정 PD와 만나 한층 섬세해졌다. ‘쌈, 마이웨이’(2017) 등을 연출한 이 PD는 좋아하는 사람이 반경 10m 안에 들어오면 알람이 울리는 ‘좋알람’ 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미래형 판타지를 2019년 현재에 꼭 맞게 구현해냈다.

10일 서울 을지로 작업실에서 만난 천계영 작가는 “너무 떨려서 아껴보고 있다”고 말했다. 2017년 처음 드라마 제작이 결정됐을 때부터 김조조 역에 김소현 배우의 얼굴을 떠올렸단다. 그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앱을 직접 디자인하고, 실제 앱을 만들어 출시할 만큼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아직 웹툰처럼 좋알람이 울리진 않지만, 차차 발전시켜나간다는 계획이다.

드라마 ‘좋아하면 울리는’. 주인공들의 고교시절에서 출발해 4년 뒤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야기의 뼈대 자체가 김조조와 이혜영(정가람), 황선오(송강)의 삼각관계다 보니 자칫 잘못하면 자극적으로 흐를 수 있어서 걱정했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의 감정선이 다 보이더라고요. 좋알람도 우리가 실제 쓰는 무난한 알림음이어서 더 그 세계를 더 진짜처럼 만들어준 것 같아요.”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인 혜영이와 선오 중 누가 진짜 ‘남주(남자주인공)’냐에 대해서는 “둘 다”라고 답했다. “로맨스가 있으면 다 남주죠. 다만 남주를 일방적인 구원자 역할로 그리고 싶진 않았어요.”

다들 손으로 만화를 그리던 1996년 포토샵 프로그램으로 작업한 ‘탤런트’로 공모전 대상을 받고, 2007년 ‘하이힐을 신은 소녀’부터 3D맥스를 사용할 만큼 입체적 구현에 공을 들여온 그였지만 영상화 작업은 쉽지 않았다. 논의 중이던 ‘오디션’ 뮤지컬 제작이 무산되고, SBS 드라마로 제작된 ‘예쁜 남자’(2013~2014) 역시 한 자릿수 시청률에 머물면서 자신감을 앗아간 탓이다.

천계영 작가의 웹툰 ‘좋아하면 울리는’.

“그래서 처음에 제작진에게 편지를 썼어요. 좋아하는 마음이 측정되고, 좋아할 사람을 예측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긴 하지만 디지털 대 아날로그로 각색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그건 너무 낡은 프레임이잖아요. 기술 그 자체를 두고 좋다, 나쁘다로 평가할 순 없잖아요.”

그는 엔지니어로 일하던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집에 늘 전자계산기며 각종 기계가 널려 있었어요. 애플 초기 모델 컴퓨터도 있었고. 아버지가 얼리 아답터니 저도 기계랑 친했죠. 과학잡지도 많이 보고.” 본래 의상학과를 가고 싶었던 그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이화여대 법대를 졸업했다.

그렇다면 상상력을 싹 틔워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무래도 기억력이 나빠서인 것 같아요. 한번 본 영화를 다시 봐도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롭거든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는 극장에서 37번 봤고, 제 작품 앞부분을 까먹기도 하죠. 기억이 부분 부분으로 쪼개져 무의식 어딘가에 기체 형태로 저장돼 있다가 막 뒤섞여 다른 식으로 나오는 게 아닐까요.”

요즘 그는 목소리로 그림을 그린다. 지난해 3월 악성종양 제거 수술을 받으면서 그간 혹사해온 손가락에도 퇴행성 관절염이 찾아온 탓이다. 마우스로 클릭할 때마다 닳아 없어진 연골 때문에 지독한 통증을 느낀 그는 새롭게 일하는 법을 고안했다.

“프레임 한 개” “왼쪽 말 칸” “몬순이 찾아줘” 등 미리 입력해둔 명령어를 활용해 작업하는 것. 지난 7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작업 과정이 생중계되면서 잦은 휴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쑥 들어갔다. 6개월에 걸쳐 한 회(163화)를 완성할 만큼 작업 속도는 현저하게 떨어졌지만 그는 “내 손으로 완성할 수 있게 돼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처음엔 암이라고 해서 마음이 엄청 조급했어요. 이야기는 결말까지 다 짜여 있는데 그림을 그릴 수는 없고. 모든 능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무리하게 연재를 강행하는 바람에 중간중간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러가기도 하고. 처음부터 응원하며 봐주신 분들에게 너무 죄송했죠.”

하지만 연재 재개 시점을 못 박는 것은 꺼렸다. 매일 아침 9시면 작업실에 나와 밤 11시까지 주 6일을 강행군하고 있지만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될까 두려워서다. “목표는 올해 안에 시작하는 건데 작년에도 똑같은 말을 했거든요. 웹툰도 시즌7로 끝난다고 했는데 시즌8을 준비 하고 있고, 더 길어질지도 모르고요. 저도 드라마 시즌2를 꼭 보고 싶으니까 부지런히 해야죠.”

차기작으로는 사극을 준비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공개할 수 없지만 “블렌더 프로그램으로 작업할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시네마4D로 ‘좋아하면 울리는’을 작업하면서 그림체가 많이 바뀌었어요. 프로그램을 바꾸면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게 된 거죠. 같은 걸 오래 하다 보면 구태의연해질 수 있잖아요. 많이 기대해주세요.”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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