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못 쓰는 ‘퇴행성관절염’ 손대신 목소리로 컴퓨터 그림 그려 인기 웹툰 ‘좋아하면 울리는’ 
넷플릭스 드라마 리메이크 전세계 190개국 시청자 만나 ‘좋알람’ 그려내며 젊은세대 호평

 

천계영 작가가 컴퓨터에 명령어를 입력해 만화를 그리던 도중 카메라를 보고 웃고 있다. [사진 제공 = 넷플릭스]

천계영(49)은 지독하게 그린다. 소싯적엔 하루에 18시간을 그렸고, 휴식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요즘엔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11시에 퇴근하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일요일엔 의무적으로 쉬고 있는데, 빨리 만화를 그리고 싶어서 “어떻게든 잠을 자며 일요일을 힘들게 보낸다”고 한다. 그는 “쉬는 게 일하는 것보다 재밌었던 적은 없었다”고 했다. 만화를 그리기 위해 태어난 사람, ‘호모 카투니스트’라고 표현할 만하다.

하루 종일 만화에만 꽂혀 있는 천계영의 상상력이 전 세계 190여 개국 시청자와 만나고 있다. 김소현·정가람·송강 주연의 넷플릭스 동명 드라마로 리메이크된 ‘좋아하면 울리는’ 이야기다. 10일 서울 을지로 위워크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원작을 너무 잘 살려줘서 제작진에게 고마웠다”고 드라마판 감상 소감을 밝혔다.

‘좋아하면 울리는’은 2014년부터 다음웹툰에서 연재된 순정 만화다.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반경 10m 내로 접근하면 알람이 울리는 애플리케이션(앱) ‘좋알람’을 중심에 두고 펼쳐지는 삼각관계를 그렸다. 앱 이용자는 좋알람을 통해 반경 내에서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몇 명 있는지를 알 수 있을 뿐, 누구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이용자들은 거리와 사각을 계산해가면서 누가 자신에게 호감 있는지를 추리하고, 스스로의 속마음을 감추는 두뇌 싸움을 한다.

IT(정보기술) 기기 오타쿠가 했을 법한 이러한 구상은 천 작가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바로 그 자신이 IT 마니아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어렸을 때부터 과학동아를 계속 보면서 최신 기술 동향을 살펴봤어요. 제가 순수하게 좋아하는 것을 펼쳐놨을 때 독자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래서 재밌어 해주신 거 같아요.”

 

사실 전작인 ‘하이힐을 신은 소녀’와 ‘예쁜 남자’의 반응이 기대 이하였다고 한다. 어느덧 중견 만화가가 된 입장에서 출판사의 매출을 고려하며 작품을 기획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그는 추측했다. 그래서 지금의 명성을 만들어준 초기작 ‘오디션’ 때의 마음가짐으로 되돌아갔다. 음악에 빠져 있었던 그가 ‘밴드’에 대해 그린 이 만화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제가 다 지어낸 노래인데 독자들이 라디오 프로그램에 신청곡으로 너무 많이 넣어서 디제이들이 방송 중에 ‘실제로 없는 노래’라고 말해주곤 했거든요.”

가상의 존재를 실재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천계영의 능력은 ‘좋아하면 울리는’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그는 “만화가 연재된 후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좋알람’이 검색 순위에 계속 들어왔다”고 말했다. ‘좋알람’ 앱을 실제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다. 러브알람이라는 이름으로 그가 창업한 회사에서 지난달 출시한 ‘좋알람’은 다운로드가 이미 100만회에 달한다. “독자와 시청자들이 ‘좋알람’을 검색했을 때 ‘가짜였구나’라고 실망하지 않았으면 싶었죠. 팬들에게 선물로 주고 싶었어요.”

이렇게 만화를 그릴 수만 있다면 누구보다도 행복할 사람에게 세상에서 가장 가혹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 3월 병원에서 퇴행성관절염을 얻었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예전처럼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증상이 점점 악화될 것이라는 의사의 이야기에 그는 “한동안 좌절했다”고 털어놨다. 1년 넘게 재활운동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던 그는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에 자신의 병명을 영어로 검색했다. “병뚜껑 따는 도구부터 손힘을 키워주는 장갑, 페달로 작동하는 마우스 같은 걸 구매해 모두 써봤어요.”

여러 실험 끝에 목소리로 웹툰을 그릴 수 있게 됐다. 오른손에 쥔 마우스로 좌표만 찾고, 클릭은 명령어로 한다. 마우스를 클릭할 때마다 연골이 닳기 때문에 손가락 사용을 최소화한 것이다. 천 작가가 “줄 바꿔서, 프레임 한 개, 왼쪽 말칸, 보통대사” 등을 외치면 프로그램이 그를 보조해 만화를 완성해간다. 항상 새로운 기술이 있으면 써봐야 직성이 풀리는 그는 2000년대 초부터 만화에 3D 작업 방식을 적용했다. “동일한 그림을 여러 번 그리는 게 싫은 거예요. 친구들이 ‘그림을 그리지 않고 만들고 있냐’고 했지만 저는 실용주의자라서 작업 단계를 줄이고 싶었거든요.”

AI(인공지능) 혁명으로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비관론이 득세하는 시대이지만 그는 “기술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보다는 어떻게 인간에게 더 이롭게 발전시켜 나갈지 보는 게 즐겁다”고 말했다. 그는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을 그린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 인간이 너무 멋있어서 눈물이 났다”며 “이세돌도, 알파고를 만든 사람도 다 인간”이라고 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똑같은 걸 반복하는 게 제일 싫다”는 말을 남기고는 어제보다 조금은 더 불편해진 손가락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발굴하러 들어갔다.

[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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